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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양반 인구비율이 고작 3%였다고 하네

댓글 : 12 조회 : 366

최근 근현대사 강의 듣다가 들은 사실인데 조금 충격적이구만.

교과서에서는 조선 후기의 상공업의 발전과 그에 따른 매관매직으로

인구의 절반은 양반이 된 것 마냥 묘사해서 신분제가 해체되는 모멘텀이 온 것 처럼 묘사되있던데

이 사실대로라면 조선 후기도 꽤나 견고한 신분제 사회였네.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케이스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였던거고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12
홀홀홀츠 10.12 01:54  
신분제 폐지가 됐는데도 존재하는 게 웃긴거아니여? 암암리에는 있었겠지만 공식적으론 0이여야하는 거 아님?
트레바퀸. 10.12 01:54  
홀홀홀츠 법적으로야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 인식과 관습에 남아있던 양반이 하루 아침사이에 사라질수가 없지. 데라우치 총독때 까지만 해도 호구조사에 공식적으로 양반여부를 조사했고 총독부 조선관리를 임용하는 과정에서 양반유무를 따지기도 했다네
홀홀홀츠 10.12 01:54  
트레바퀸. 역시 625로 모두가 평등해졌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군
트레바퀸. 10.12 01:54  
홀홀홀츠 족보거래는 오히려 1910~1920년대에 가장 성행했었다고 하더라고. 좀 충격적이였음 ㅋㅋ 확실히 625로 리셋된게 큰 것 같긴해
펨코청지범수용소 10.12 01:54  
근거 자료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믿기는 힘드네.. 국사 교육과정에선 임란이후 공명첩 납속책으로 양반 비율이 늘었다고 서술하고 조선 후기에는 신분제가 문란/동요했다고 서술되어있는데 3퍼센트라 그 많은 족보위조편입이 일제강점기시절에 거의 다 이루어졌다고 봐야하나
트레바퀸. 10.12 01:54  
펨코청지범수용소 1910년의 호구조사에서 총가구수 289만 4777호 가운데 양반이 5만4217호로 겨우 1.9%에 불과하다. 호 수가 아닌 인구비례로 따지면 대략 3% 정도의 비율이다. 김성우의 '조선후기의 신분제' 라는 논문에 따르면 대한제국 정부나 총독부에서 조사한 빡빡한 기준이 아닌 광의의 범위의 양반까지 포함하면 5~10%까지 비율정도로 볼 수도 있다고 함
펨코청지범수용소 10.12 01:54  
트레바퀸. 갑오개혁이후 신분제는 혁파되었지만 고전적 의미에서의 양반 및 신분 상승자는 적어도 20프로는 넘었을거라 생각하는데...3퍼센트는 조선초 문무반 진정한의미에서 양반 비율이 그 쯤 됐을걸
트레바퀸. 10.12 01:54  
펨코청지범수용소 너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양반 비율로 따지면 애초에 0.몇 퍼센트 단위로 끊어짐. 조선시대 통틀어서 문과 합격자는 1만 4600명이 전부임. 구한말에 신분제가 문란했다는 서술도 현재로선 의심을 많이 받는 주장이고 오히려 신분제에 큰 동요는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라고 바라보는게 현재 학계 통설인걸로 앎. 공명첩,납속책이나 족보 매매같은 합법/비합법적인 신분상승 수단도 말이 쉽지 전자의 경우 나라가 위급할때 발급하는 개념이라 상황 해결되고 나면 갑자기 무효화 선언해 버려서 백지화 되는 경우도 잦았고 전자,후자 모두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서 어지간한 농민은 꿈도 못꾸는 경우가 많았음.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 내외라고 보는게 맞을듯
펨코청지범수용소 10.12 01:54  
트레바퀸. 양반은 문/무과 합격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가문)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공명첩 납속책 같은건 나라에서 발행하는 신분상승증서 개념이고 오히려 나라가 어지러울때 족보매입/위조등 비합법적 신분 상승 루트가 많았다고 봐야지 난 니말이나 본문글이나 동의 못하겠다
트레바퀸. 10.12 01:54  
펨코청지범수용소 ㅇㅇ 그니까 조선500년 역사에서 1만 4600명이 자손을 대대손손 낳아봤자 전체 인구에서 얼마나 차지하겠음? 그리고 신분제 국가에서 신분상승증서를 나라에서 전매한다는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공명,납속은 나라 재정이 궁박할때 발행하는거고 그 궁박한 상황이 끝나면 전부 태워버려서 무효화하는 경우가 잦았다니까. 대표적으로 임진왜란때 발행했던 공명,납속책도 임진왜란 끝나고 모두 불태워서 무효화시킴. 게다가 공명,납속으로 사는 신분은대대로 이어지는게 아님. 그리고 너가 공명,납속,족보 매매에 큰 돈이 들어간다는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네. 애초에 드는 비용 자체가 만만치 않아서 일반적인 농민,상공인은 낼 수 없는 비용이였음. 당시에도 졸부들이 족보를 산다는 인식이 강했다는데 졸부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많아봤자 얼마나 될 까? 많아도 5% 내외아니겠니? 마지막으로 내말과 사학계 의견에 동의안하는건 걍 니 생각이지. 사학계 통설에 동의 못하겠으면 너가 반박하는 논문 써서 사학계에 충격을 주는 신선한 루키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감? 논문 발표 ㄱㄱ
전구러쉬 10.12 01:54  
6.25 없었으면 아직도 신분으로 갈리는 경향 남았겠네.
미키마우스쨩 10.12 01:54  
기본적으로 양반의 요건인 과거 응시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4대 내에 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품계라도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양반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과에 급제 하지 않더라도 조상대에 청금록(靑衿錄)이라는 지방 유생, 진사, 생원 명부에 오르면 자손들은 경제력으로 몰락하여 잔반이 되더라도 대대로 양반 대접을 받으며 그 고을에서는 뼈대있는 가문 행세를 했다. 즉 지방 향교나 서원의 유생명부에 이름을 올려 놓으면 사실상 역이 면제가 되어 양반 신분을 유지했다. 무슨말이냐면 급제를 하지 못한 양반들이라도 대대로 양반행세를 하고, 일반 양인들은 공명첩으로 벼슬을 사거나 해도 청금록이라는 고을 양반 명부에 오르지 못하면 당대에만 역을 면제받고 신분은 물려 줄수 없었다는 것.[14]  과거 제도 -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A%B3%BC%EA%B1%B0%20%EC%A0%9C%EB%8F%84